현대 여성들의 삶은 지금 어떤가요? <포제션> --------------------------

다음과 같은 것들이 그곳에 있다. 정원과 나무

나무뿌리에 뱀, 황금과일,
나뭇가지 그늘 속의 여인
흐르는 물과 푸른 공간.
그것들이 그 곳에 있고 예전에도 있었다.
고대세계의 경계에 헤스페리데스의 숲 속에서, 영원의 가지 위에서 과일이
황금빛으로 빛났고, 그 곳에 용 라돈이 보석으로 빛나는 볏을 곧추 세우고,
황금발톱을 문지르고, 은빛 이빨을 날카롭게 세우며
졸았고, 영겁의 시간 속에서
교활한 영웅 헤라클레스가
용을 축출하고 황금과일을 빼앗으로 올 때까지 기다렸다.
                                                                                         - 랜돌프 헨리 애쉬
                                                                                           <프로세르피나의 정원(1861)>

영화 <포제션>은 1990년 A.S 바이어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기네스 펠트로의 주연으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다크나이트>에 나왔던 '하비 검사(투 페이스)' 역의 애론 아크하트도 주연으로 등장합니다.
위의 시는 동명소설에 나오는 시입니다. 1장 1절에 나오는 시로 <포제션>은 이 시로 먼저 그 신호탄을 쏩니다. 소설 <포제션>은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과 더불어 완독하기 어려운 소설로 실제 여류소설가이자 영문학박사인 바이어트 교수의 창작시와 문학비평이론의 집성체로 소설은 그 상징과 의미적인 면에서 상당히 깊어서 단숨에 이해하긴 힘듭니다. 그렇지만 영화 <포제션>은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문학비평이론들을 최대한 덜어내고 창작 시도 몇 편만 활용하여서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로 그려냅니다.

"롤랜드 미첼(애론 아크하트 분)"은 영문학 박사로 블랙커더 교수의 밑에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영문학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담당교수는 물론 다른 교수들로부터 무시를 종종 받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런던 도서관에서 비코의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주 연구분야인 "랜돌프 헨리 애쉬"를 탐구하던 중 한 개의 장문의 편지를 발견합니다. 랜돌프 헨리 애쉬는 절제된 사랑시로 유명하였고 부인만을 바라보고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해왔다고 알려져 왔었는데 롤랜드는 애쉬가 부인이 아닌 다른 여성에게 열정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두 장의 장문편지를 도서관에서 훔쳐서 그는 새로운 발견을 했다고 생각하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합니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애쉬가 열망한 여인은 "크리스타벨 라모트"라는 당대의 진보적 여류시인임을 알게 되고 라모트를 연구하는 "모드 베일리 박사(기네스 펠트로 분)"와 같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애쉬와 라모트의 로맨스, 미첼과 베일리의 로맨스. 그리고 이 발견을 탐내는 다른 교수들의 개입이 섞이면서 영화는 진행이 됩니다.


이처럼 영화는 문학비평이나 시, 신화, 상징론과 같은 어려운 측면들을 제외시켜서 남녀간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영화와 원작소설에서나 인물들의 성격과 특성은 거의 반영되어서 영화도 훌륭한 영화화의 모범이라고도 불리며 명작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제일 주목할 만한 관점은 이 작품 속을 관통하는 [페미니즘]입니다.
페미니즘(Feminism)은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말합니다. 기존의 남성의 여성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여성의 양성평등 및 여성권리의 신장을 주창하는 용어로 이 작품의 페미니즘의 대명사 격인 캐릭터는 '크리스타벨 라모트' 입니다.

크리스타벨 라모트가 살았던 시기는 19세기 후반 유럽의 낭만주의,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현대 여성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현대 여성들의 삶은 어떤가요?

태어나면 이름을 받고 출생신고도 똑바르게 되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의무교육 과정을 거치는 것은 물론 대학교에 진학을 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여자는 투표권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습니다. 자유연애는 물론 자신의 의견 표시, 사회활동, 취직, 대학원 진학 등 남성이 행할 수 있는 모든 행동과 동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여자에게 성차별을 행사하는 사람이 처벌을 받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사회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요?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된 것은 1922년.
투표권을 준다는 것이 한 명의 정당한 성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으로 볼 때 진정한 여성의 권리 인정은 90년 정도입니다.
실제로 중매나 선을 통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닌 자유연애를 하거나 골드미스로 사는 것도 불과 50여년의 세월에 지나지 않습니다.
1960년대 이후 파급적인 피임 기술의 발달로 본격적으로 커리어우먼과 골드미스가 시작된 것도 50년 남짓입니다.





표면적으로 세상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 흐름이 시작된 것은 얼마 되지도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스마트폰과 인터넷 아닌가요?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상용화가 시작된 것은 1992년 유럽의 CERN 연구소에서 '월드 와이드 웹(WWW; World Wide Web)' 을 개발한 이후부터입니다. 이제 겨우 21년. 그런데 이제 인터넷은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존재이며 없어지는 순간 전 세계에 혼란을 줄 정도로 사회와 세상의 본질적 요소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도 최초로 나온 것은 미국 BellSouth사에서 1994년에 출품한 것으로 아이폰과 갤럭시의 열풍으로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상용화 된 것은 2007년 1월 9일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70%가 넘는 비율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현대 여성의 자유로운 삶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다면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상은 정반대의 위치입니다.
빅토리아 시대 당시 영국의 여성은 두 가지 부류 중 하나였습니다.

Angel in the House or Mad woman at the Attic
집안의 천사 혹은 다락방의 미친여자




대표적으로 보여준 소설이 영국 여류작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일 것입니다. 실제로 <제인 에어>에는 다락방의 미친여자가 로체스터 백작의 집안에 돌아다니죠. 이 당시 여자들의 삶은 예의바르고 온순한 여자이며 집 안을 지키며 성욕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 온순한 여자입니다. 이것을 지키지 못 하면 다락방의 미친여자가 되어서 감금되거나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데 혼자서 살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은 '가졍교사Governor'인데 이것에 대한 시선이 좋지도 않았고 수입도 크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자 혼자서 살기란 불가능하고 남자가 집안의 가장BreadWinner가 되는 것이 빅토리아 시대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타벨 라모트는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이 작품의 페미니즘이 팍팍 드러납니다.
라모트는 블랑쉬라는 여류 화가와 같이 사는데 동성애자입니다. 라모트는 정확하게는 양성애자입니다.
이렇게 이 당시에 여자 두명이서 같이 사는데 라모트는 동성애에 대한 성욕도 확실히 드러냅니다.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구요. 그리고 진보적인 여류시인으로 자신의 시에 여성의 진보적인 이데올로기도 삽입하여서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듣습니다. 여기에 랜돌프 애쉬는 좋게 평가를 하구요.


애쉬와 라모트가 밀애여행을 하면서도 라모트는 애쉬를 향한 마음을 확연하게 잘 드러냅니다. 오히려 애쉬가 밀애의 불안함에 떨 때 자신이 위로해주는 남성적 역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라모트의 모습은 '이브EVE' 와 같습니다.

성경의 태초 신화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
맨 처음에 나오는 시에 정원과 나무가 나오는데 이 정원은 에덴동산을 말하며 나무는 사과나무를 말합니다.
사과는 선악과(善惡果)로 원죄의 상징이죠. 그런데 여기서 이브는 아담에게 사과를 먼저 먹으라고 권해주는 적극성을 보이는데 여기서 부정적인 시각은 여성이 원죄의 원인이라는 점도 나오지만 긍정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여성이 남성을 이끄는 행동의 주체로도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라모트는 그 행동의 주체를 작품 속에서 드러냅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라모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당대의 여성 압박 사회 속에서 애쉬의 아이를 낳아도 자신이 키울 수가 없기에 따로 다른 집에 아이를 맡기고 자신은 친엄마라는 사실을 숨긴 채 그 집에서 딸을 키우며 살아가고 죽습니다. 결과는 비참했지만 그럴 용기와 힘이 있었다는 것.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라모트의 페미니즘 적인 것도 보입니다. 현대에서 베일리 박사는 머리를 항상 올려서 묶고 다니는 남성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애인이 묶고 다니라는 말에 순종하는 순종하는 여성상을 표방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머리를 내리는 것도 미첼 박사가 내리는 게 어울리다면서 내리주지요. 베일리 박사와 라모트는 비교가 됩니다.




이 작품은 또한 1990년대 작품인 만큼 포스트모더니즘 적 관점도 가지고 있는데 일단 랜돌프 애쉬와 크리스타벨 라모트는 작가가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입니다.

허구의 인물에 대한 문학비평은 일반 모더니즘에서 탈피를 하는 것입니다. 왜곡된 지식의 편향과 전승이라는 점을 전달하는데 이에 대한 비판하는 장면이 영화 속에서 종종 나옵니다.

블랙커더 교수가 롤랜드 미첼에게 애쉬의 딸기잼 단지 개수를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리는 데 이것은 영문학에서는 새로운 것이 거의 없는 풍조이며 쓸데없는 것에 매달려야 한다는 학문 기조를 비판하는 대목이 영화에서도 나옵니다. 그런 블랙커더는 미첼의 발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요. 결말에서도 미첼과 베일리 박사는 애쉬가 자신이 딸을 만나지 못 했다고 결론 짓지만 영화 에피로그에서 애쉬는 프랑스에서 라모트를 찾다가 라모트와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들판에서 우연히 만나고 그 애를 통해 시를 라모트에게 전달하려 하지만 아이는 놀다가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종이는 바람을 타고 사라지면서 영화는 아이가 저 멀리 뛰어가는 장면과 함께 끝납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이 완전한 지식이 아닌 불완전한 지식인 것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로 이 또한 불완전함이 곧 완전함이며 완전함도 불완전할 수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즘 적 패러다임을 보여줍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역사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현대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보지만 과거에는 역사란 단순히 과거의 에피소드라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랜돌프 헨리 에쉬라는 인물은 추측하건데 빅토리아 시대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추측됩니다. 왜냐하면 로버트 브라우닝은 아내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을 위해서 여러가지 사랑시를 썼고 아내에게 죽을 때까지 충실했다고 합니다. 소설처럼 불륜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생각하건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문학으로는 <지킬박사오 하이드 씨>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있었는데 이는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추악하다는 인간의 내면과 겉으로만 화려한 당대 사회를 비판했다는 비평도 있는데 <포제션>이 낭만주의 시인을 소재로 삼아서 실제로는 불륜을 저지른 한 시인을 꼬바른 것도 포스트모더니즘적 성향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영화 제목이 <포제션>이기도 한데 이 영화 제목의 의미는 사랑의 소유라는 측면도 있고, 영화에서는 크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애쉬의 편지와 유품을 둘러싼 소유욕에 가득찬 인물들의 투쟁이 나타나기도 하고 미첼의 소유욕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극 중에 크로퍼 라는 교수가 나오는데 돈이 많아서 경매장에서 각종 애쉬의 유품들은 물론 다양한 아티팩트들을 삽니다. 그는 1차적 소유를 하는데 극 중에서는 거의 악역으로 작가의 현대물질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소유는 지식적 학식적 소유로 "교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롤랜드는 영화에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원작에서는 박탁감과 자괴감의 소유자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인이라는 입지에도 불구하고 영문학 박사학위를 가졌지만 물질적으로 뷰유하지도 않고 학식적 입지도 거의 없고 베일리 박사와의 공동연구를 하면서 베일리 박사에게 업적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소유에 집착하는 인물입니다. 작가는 롤랜드라는 주연인물을 통해서 "진정한 소유"에 대한 의문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랜돌프 헨리 애쉬는 1850년대를 주로 활동하는데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해로 과학은 신에게서 인간을 분리시킨 해입니다. 창조론은 인간이 곧 신의 소유물이라는 것이었지만 진화론이라는 것을 통해서 인간은 결국 신의 소유물이 아닌 자기 자신적 주체라는 사실을 주장한 과학적 이론이지요. 서두에 등장한 시도 신과 인간의 투쟁을 그리고 여성을 투쟁의 주체로 보았지요. 또 제목 소유가 의미하는 바는 신과 인간에게서 분리한 인간정체성과 인간주체의 자기소유라는 측면도 띄고 있습니다. 파고 팔수록 정말 다채롭고 어려운 작품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어렵네요 정말.


라모트의 삶을 들어보면 포제션이란 그녀를 통한 "페미니즘적 삶의 소유". 모든 여성들이 원하는 삶의 의지이자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그녀가 실존인물이며 현대의 모습을 본다면 만족할 지 더 나아가야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현대의 여성들은 라모트처럼 사회의 억압적인 패러다임이 원인이 되어서 비극으로 치닫는 결말을 맞이하지는 못 할 겁니다.




저는 뭐 페미니즘 보다는 남성다움에 좀 더 주목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대두되고 확산되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남자들은 5000년 지배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한 번 되돌아보는 경향을 가지고 진정한 남성다움이란 뭔지 고민을 해야한다고 생각해봅니다. 단순히 여성을 존중하는 것이 남성다운 것인지 아니면 여성을 독립적 개체로 두고 <파이트클럽>이나 <겟썸>처럼 신체적 남성다움을 좀 더 추구해야하는 건지.



P.S 서두에 등장한 시의 원문


These things are there. The garden and the tree

The serpent at its root, the fruit of gold

The woman in the shadow of the boughs

The running water and the grassy space.

They are and were there. At the old world's rim,

In the Hesperidean grove, the fruit

Glowed golden on eternal boughs, and there

The dragon Ladon crisped his jewelled crest

Scraped a gold claw and sharped a silver tooth

And dozed and waited through eternity

Until the tricksy hero Herakles

Came to his dispossession and the theft.

                                                          - Randolph Henry Ash From <The Garden of Proserpina>, 1861



P.S 결말에서 기네스 펠트로가 머리를 푸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네스 펠트로는 머리 올린 게 더 예쁨. 정말 신기함. 머리카락이 오히려 그녀의 미모를 방해하다니...대단하다 기네스 펠트로 ㅋㅋㅋ

아님 그냥 내 취향차이인가?? ㅋㅋㅋㅋ




참조문헌 : http://millenione.blog.me/120056008053

               <The possession>

이미지출처 : 다음 영화




덧글

  • 제트 리 2013/12/23 11:52 # 답글

    저 시대에는 지금과는 여성상이 다르긴 하군요
  • 배길수 2013/12/23 13:08 # 답글

    원작은 어렸을때 한역판의 그림 표지에 혹해서 읽어보려다 ???하면서 못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추리소설처럼 읽어버린 [장미의 이름]처럼 이것도 지금 다시 읽으면 느낌이 전혀 다를 것 같네요.
  • 클릭◀ 2014/04/04 16:00 # 삭제 답글

    좋은자료 많네요. 포스팅잘보고 갑니다.
    제 블러그도 놀러와주세용~ ^0^
    여러분에게 좋은정보를 제공하고자 이렇게 글남깁니다.
    행운은 아무에게나 아무때나 찾아오는게 아니랍니다.T P 6 8 6 。ⓒⓞⓜ
    최수연 팀장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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