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만화책은 야하다.
2002년~2005년 내외 시기에 청소년 남학생이었던 사람은 누구나 읽은 만화책 <딸기 100%>.이 만화는 일본 망가로 2002년에서 2005년까지 주간소년점프에 연재한 인기만화였으며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초반에 만화는 웹툰보다는 인쇄물 및 정기간행물 만화가 대다수였으며 인기를 모은 것도 간행물 만화였다. 물론 스캐너의 등장과 인터넷 공유프로그램(P2P 프로그램 : 프루나, 당나귀, 피디박스 등)으로 만화계의 침체기가 본격적으로 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 당시에 나는 중고등학생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남중남고를 나왔다. 다행히 공대는 안 갔다. 머리가 자연과학 이과계통으로 굴러가지 않은 것은 살기 위한 수컷본능이 아니었나 싶다.
남중남고를 다니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 이 만화책 <딸기 100%(이하 <딸기>) >이다.
총 19권의 완결본이 있는데 굳이 [19] 라는 숫자로 완결을 지은 것은 정말 작가의 센스(?)일까??
<딸기>는 고교생 마나카 준페이가 이즈미자카 고등학교에서 겪는 사각로맨스이다. 이웃 오우미 여고에 다니는 여고생 '니시노 츠카사', 마나카와 같은 학교인 동창생 '토죠 아야' 그리고 '기타오오지 사츠키'. 마나카 준페이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이즈미자카 고등학교 영상연구부를 친구와 같이 만들어서 영화를 만들면서 꿈을 키워나가고 그 외 남자의 다른 부위(?)도 크게 키울 여러가지 야한 상황에 처하면서 4각 관계로 치닫는다.
중고등학교 시절 이 만화책에 정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야하지만 그 선을 넘지 않는 그 아슬아슬한 상황에 치고빠지는 오묘함과 절묘함이 정말 간질거려서 재미는 물론이고 시각적인 만족감(!)을 선사해줬기 때문이다. 인체의 부위 5% 빼고는 보이는 상황들이 봇물쏟아지듯 나오니 그 시각적쾌감은 절묘하다 그러면서도 노골적이지도 않고 퇴폐적이지도 않고 도를 넘은 선정성은 없다.
대학교에서 와서 우연히 이 만화책을 다시금 한 번 더 읽을 기회를 가졌다.
시험 기간에 이게 무슨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 푹 빠진 적이 있어서 그 때의 감상은 다시금 거의 완벽하게 되살려졌고, 현재의 감상은 이 글을 쓰기 전에 완성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의 감상은 단순히 4각 관계의 로맨스에서 오는 아슬아슬함과 인물들의 미모에서 감탄만을 했다. 물론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있는 소년판타지라는 것을 감지는 했지만 새삼 3명의 미인들에게 둘러싸인 주인공에게 부러움과 동경을 가졌다. 실제로라도 일어나면 좋을 듯 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히로인 '니시노 츠카사' 의 매력에 빠져서 이런 여자를 만날 거라고 다짐을 하였다.
대학생이 되어서 군대도 갔다오고 나서 읽어보니 정말 이 4각 관계는 정말이지...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자중지란 적인 관계는 정말 "만화는 허무맹랑하다." 라는 누군가의 지론에 정말 비판할 여지를 없게끔 만들었다. 남자와 여자의 진정한 연인관계의 선을 넘는 상황들이 여러번 반복되는데 그 상황에 못 넘어가는 남자나 못 넘어가게끔 만드는 상황이나 둘 다 모두 비현실적이며 얼토당치 않으며 3명의 경국지색 화용월태 절세미인이 한 남자를 3년동안 좋아한다는 상황은 비현실을 넘어서 부조리함과 불성립이라는 어휘말고는 나오지가 않는다.
정말 사춘기 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였다. 인물구도와 여성을 활용한 면에서도 정말 사춘기 소년만의 이야기이다.
지금와서 읽어보니 나도 과거에는 이 허무맹랑한 스토리에 빠져들은 한 명의 몽정기 사춘기 소년이라는 사실을 정말 극명하게 깨달았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인용구로 나의 과거를 마무리지을 수 밖에 없다.
"What is done is done, What is past is past.(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며 과거인 것은 과거인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마나카 준페이가 니시노 츠카사라는 여성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하고 탐구를 해보았다(고딩때에는 생각도 안 해보았는데 지금은 할 수 있다). 모든 작품에는 포인트가 있으므로 그 포인트를 탐구하였다.
고등학교에서 아이돌로 불리며 얼굴, 몸매, 성격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세 명의 미소녀.
근데, 생각해보니까 허구의 인물이라지만 미성년자(특히 교복 입은..) 라서 민감한 주제이긴 하다.....
일단 토죠 아야.
이 여자애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문학소녀이다. 주인공과도 자신이 수학 노트에 적은 소설로 인연이 시작되어서 자신의 진로를 소설가로 정하고 소설가로 등단하기까지 한다. 매우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지만 나긋나긋하게 말도 잘 하는 조신한 여성이다. 전형적인 전통 여성상의 표상이다.
하지만 이 여자애는 이제 보니 이상한 면모가 보인다.
첫번째로, 이 여자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단순히 한 남학생에게 걸었다. 바로 주인공 마나카에게.
극중에서 토죠 아야를 좋아하는 '야마치'라는 동급남학생이 토죠 아야에게 다음과 같이 따끔하게 질타한다.
토죠 아야는 사실 원래부터 예쁘진 않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양갈래 땋은 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쓰고 다니고 내성적이다보니 존재감이 희미한 학생이었는데 마나카 준페이를 만나고나서부터 자신의 재능도 깨닫고 사랑이라는 감정도 깨닫고 자신을 꾸미는 방법도 알게 된다. 마나카 준페이를 통해서 친구들도 얻게 된다.
그러다보니 토죠 아야는 마나카 준페이에게 전적으로 심리적 의지를 하게 된다. 이 심리적 의지는 단순한 멘토나 친구를 넘어서 짝사랑으로 발전하고 마나카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면모까지 보인다. 고3 수험생이어도 마나카의 영화촬영에 주연배우로 발 벗고 나서 활동을 하는 가하면 마나카의 모든 부탁에 수긍하고 편들어준다.
마치 [각인이 된 어린 새] 같다.
재능을 발견하여서 소설가라는 진로를 개척하고 고교 졸업 이후에 마나카가 떠나가자 자신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는 긍정적인 결과도 보이지만 19권이의 스토리에서도 그 각인은 결코 벗어나지 못한 듯 하다. 여전히 마나카 준페이를 향해서 의미 모를, 본인만 알 듯한 홍조를 얼굴에 띄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각인적인 사랑은 집착의 면모를 보인다.
토죠 아야는 소극적인 여성이다. 전통적인 여성상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긋나긋하게 말을 할 수는 있어도 절대로 자신의 감정이 상해도 화를 낸다던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남의 입장과 감정에만 맞추어서 이야기한다. 특히 마나카 준페이의 감정과 입장을 헤어려주는 말을 많이 한다.
지금 보니 이상한 면모가 보이는데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과 같다.
나비 부인은 미국 해군 중위 핑거튼 대위가 결혼한 일본 여성, 초초상이다. 그런데 핑거튼 대위는 떠나고 나비 부인은 임신한 아이를 낳고 3년동안 아이를 홀로 키우며 핑거튼 대위를 기다린다. 그리고 핑거튼 대위는 떠난 지 3년 만에 돌아오는데 원래의 본처와 함께 돌아왔고 나비 부인이 키운 아이를 데려간다. 그 후 나비 부인은 자살을 한다.
토죠 아야는 이런 여성상에 완전부합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부합하는 면이 있다.
<나비 부인>에서도 나비부인 초초상은 핑거튼 대위에게 이미 아내가 있음을 보아도 크게 격노하지도 않고 크게 동요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면모가 비슷하게 만화에서 보여지는 부분이 있는데 <딸기> 초반에 마나카와 사츠키와의 친분이 쌓이며 질투를 느껴도 마나카에게 자신의 감정을 절대로 비추지 않는다.
마나카를 따라서 이즈미자카 고교에 왔는데 그 이유는 마나카와 같이 영상연구부를 같이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마나카는 의외로 영상연구부를 사츠키에게 먼저 하자고 말한다.
<나비 부인>을 비교한 것은 지나친 감은 있지만 순종적인 여성상의 일면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각인적 사랑의 비정상적인 면모는 후반부에 절정을 달린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다른 여자를 소개시켜준다. 입시학원에서 만난 '무카이 코즈에'라는 여자애다.
정말 지금와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어째서 3년 동안이나 잘 지내온 남자에게 다른 여자와의 데이트를 주선해 줄 수 있을까?
무카이 코즈에와는 절친한 우정이 있는 여자애도 아닌 그냥 학원의 아는 여자애일 뿐이다. 물론 코즈에는 아야의 짝사랑을 모르지만.
마나카 준페이를 믿기에는 그의 주변 여자들 관계를 보건대 분명 코즈에에게도 잘 대해줄 것이고 남녀 간에 다른 감정이 싹틀지도 모르는 것이다.
수동적인 여성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토죠 아야는 마나카 준페이가 니시노 츠카사와 사귀고 난 이후에도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심지어 다음과 같은 행각을 저지르기도 한다.
물론 젊은 시절의 폭풍적인 사랑이기도 하며 결혼한 유부남과의 간통도 아닌, 어찌보면 합법적인 로맨스이기도 하다.
나중에 대학교 졸업 이후에 만나서도 토죠는 마나카에게 다음과 같은 표정을 짓는다.
물론 마나카가 토죠 아야의 고교시절 소설을 영화화하겠다는 다짐에 흐뭇해하는 감정표현일 수도 있지만 어찌보면 그 때의 감정의 재현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그녀는 자신의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소극적이고 당당하지 못하고 올곧지 못한 자기자신때문에.
'기타오오지 사츠키'라는 인물은 매우 독특한다.
당시에는 '어우, 뭐 이런 여자애가 있지?' 라면서 정색을 했던 반면에
지금은 '아우, 이런 여자애 어디 없나?' 라고 생각이 든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남성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여자다.
당당을 넘어서 당돌하며 노골적이며 솔직하다. "좋아해.' 라는 서슴없이 먼저 하는 직설적이며 좋아하는 남자에게 기습키스를 먼저 할 정도로 감정표현에 솔직하며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옷도 벗는(!!!) 아주 당찬 여자이다.
아 물론, 이 만화책에서 몸매가 아주 좋다. 넘버원이며 나머지 여자들은 올킬이다.
자신의 몸매와 얼굴의 매력이 폭포쏟아지듯하여서 수많은 남자들의 대쉬가 있어도 한 남자만을 바라보는 지고지순 순정파이되 아무리 좋아하는 남자라도 지는 것은 싫어하여서 언제나 적극적이며 진취적이고 과감한 스킨쉽을 감행하면서도 얼굴을 가득 홍조를 띄고 속으로는 떨고 있다고 말하니...
지금의 나로서는 정말 이런 여자가 온다면 정말 감사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남자가 그러지 않을까 싶다. 폭풍 몸매와 초절정 미모에 적극적이면서도 순정을 지키고. 그리고 옵션으로 백치미도 추가요. 고교 졸업 이후에는 전통음식점을 물려받으며 조신함도 갖추게 된다.
사츠키라는 인물은 토죠 아야와 같은 전선을 밟는다.
바로 집착이라는 형태이다.
마나카가 갈팡질팡하며 이리저리 여자들을 저울질하여도 자신이 저울질을 당하여도 이를 오히려 기뻐한다.
어느 누가 자신이 비교당하며 자신을 갈팡질팡하게 만들며 고교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연애감정을 소모하게 만드는데 기뻐할까?
사츠키라는 인물도 결국 당당함이라는 페르소나로 포장된 토죠 아야의 형태일 뿐이다.
당돌하며 적극적인 나비부인이냐 아니면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나비부인이냐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이 두 명의 본질은 똑같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두 명의 사랑형태를 놓고 보면 마나카 준페이의 우유부단함도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된다. 결코 이해가 되기는 어렵지만.
두 명의 사랑이 집착의 형태가 있으니 마나카로서는 급하게 내세울 것도 없는 아주 좋은 물고기인 것이다.
두 명의 레벨을 빗대면 물고기를 넘어선 범고래와 같은 대형포유류감이다. 개인적으로 범고래가 가장 아름다운 바다포유류라고 생각한다. 그 블랙 앤 화이트의 절묘한 조합이 정말로 선명하게 나타나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이 두명의 물고리를 범고래로 비유를 해보았다.
마나카 준페이의 별 것 없는 먹이에도 좋아라하며 가끔씩 멋진 묘기와 애교도 보여주며 좋은 영화 시나리오나 맛있는 발렌타인 초콜렛 같은 사냥감도 물어다주니 이 얼마나 좋은 어장 속의 범고래들인가? 가끔 싫증내면 자기가 쓰담쓰담만 해주어도 다시 좋아라해주는 어장 속 범고래들.
안타까울 뿐이다.
이 두 명의 범고래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물고기가 나타난다.
니시노 츠카사.
솔직히 똑같은 범고래인데 호불호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3명의 히로인 중 유일하게 변화가 있는 캐릭터이다.
처음에 마나카는 니시노 츠카사와 우연히 사귀게 되었지만 그 시작이 애초에 사랑이 아닌 호감이었기에 니시노 츠카사는 어정쩡하게 진행되는 마나카에게 확실하게 헤어지자고 먼저 말을 한다.
자신의 입장도 확실히 말해주고 자신의 감정도 충분히 전달한다. 그러면서도 절제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중에 우여곡절 끝에 마나카를 다시 좋아하게 되자 마나카에게 좋아한다는 고백도 적극적으로 한다.
사츠키처럼 단순히 들이대는게 아닌 마나카가 대답을 하고 선택을 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니시노 츠카사도 작가의 정해진 틀 안에서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헬렐레해도 기다려주며 배려하는 순정파적인 성격도 띄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남자 말투를 쓰기도 하며 자신을 쫓아오는 팬클럽 남자들에게 화끈하게 호통을 치며 당당한 면모도 보인다.
적정선을 걷고 있는 여자이다.
아야처럼 조신하기도 하며 사츠키처럼 당당하기도 하며 아야처럼 배려해주고 사려깊게 대해주기도 하며 사츠키처럼 적극적이며 매력을 어필하며 접근하기도 한다.
그런데 앞의 두명과의 차이점은
무작정 마나카 준페이를 좋다고만 하지 않는다.
마나카가 고백을 해도 "난 말만으로는 못 믿을 것 같아." 라면서 한 걸음 후퇴하기도 한다.
마나카랑 헤어지고 나서 재회를 했을 때 지난 번 발렌타인 초콜렛의 답례를 하고 싶다는 마나카의 말에 딱 잘라 "됐어." 라고 말을 한다.
세 번째 컷의 츠카사의 당당한 면은 말로는 절제되어있지만 몸은 분출하고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도 엄지손가락은 주머니 밖에 나와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손바닥은 내보이니 명령이 아닌 설득을 표현하고 있다.
예쁜 여자이면서도 머리는 거의 단발이다. 만화에서도 단발과 중발을 왔다갔다하는 변화가 돋보인다.
이 만화에서 결과적으로 마나카 준페이는 니시노 츠카사를 택한다.
이러한 츠카사의 올곧은 점과 아야와 사츠키의 혼합된 중용의 미덕을 겸비하였기 때문이라고 유추된다.
물론 만화 초반에서 사츠키와 실패한 연애에서 마나카 자신만의 집착이 생겨서 좀 더 잘 하고 싶다는 의지에서 온 선택일 수도 있다.
내가 이 글을 쓴 결론은 마나카 준페이 그리고 나의 과거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썼다.
고교시절당시에 마나카 준페이가 왜 니시노 츠카사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내가 너무 이 만화에 빠져있어서 그냥 객관적으로 보지도 못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에 이유가 어디있겠냐?" 라는 낭만적인 생각이 있던 시절이어서 직관적으로 츠카사를 믿었을 뿐이다. 작가의 스토리를 믿었을 뿐이다.
하지만 연애를 몇 번 해보고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금 바라본 나의 고교시절 감상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현실에 비추어서 생각을 해보았고, 나의 고교시절 선택을, 작가의 선택을 그리고 마나카 준페이의 선택을 내가 분석적으로 입증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이 선정적인 만화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나는 정말로 타락했구나 싶다. <딸기>는 정말 순수한 사랑을 그린 것임을 알았다. 왜냐하면 <딸기>의 주 독자층이 10대 소년이다보니 선정적인 장면들이 많았던 거지 그 속의 인물들의 사랑은 순수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야한 구도의 대부분을 연출해내는 사츠키도 이렇게 말을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애들도 이런 것과 비슷하다.
겁이 난다며 빼기 일쑤다.
그래서 그런지 이 만화는 19세가 아닌 15세 이상 연령가이다.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에 다가갔다가 결정적으로 확 빠져나온다. 이 인물들은 고등학생이고 순정파인 순수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겸손과 겸양의 미덕 혹은 밀당의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겸손의 미덕이라는 말은 저런 상황과 장소에서 쓰는 것이 아닌데 하하하하하.
성인이 되고 나니까 지금은 오히려 사츠키같은 여자가 더 좋다. 물론 몸매와 얼굴이 정말 우월해서 좋다.
성인이 되고 나니까 이 인물들이 사회인이 되어서도 친분관계를 유지된다면 어떨까하고 상상을 해보았다. 왜냐하면 마나카와 츠카사가 잘 사귀고 있다가 사츠키의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다가 마나카와 사츠키가 같이 밤새 술을 마셨는데 어느 순간 눈을 뜨고 보니 마나카는 사츠키와 같이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하게 되고, 츠카사보다는 사츠키가 더욱 더 적극적이니까 그 현란한 몸매와 기술...기술은 모르겠지만 그 현란한 몸매에 매료가 되어서 사츠키만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토죠 아야의 소설을 각색해 영화화하면서 토죠 아야와 업무적인 관계를 맺다가 사츠키처럼 다른 의미의 관계가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고...
역시 나의 머릿속은 타락했다.
근데 위와 같은 저런 스토리가 현대 사회에서는 충분히 실현가능하다. 현실적인 면모가 있다. 원래 불륜이라는게 저렇게 실현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타락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사회의 때를 한뜩 칠한 것이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영화가 있다. 바로 2012년 작 <벨 아미>인 것이다.
<딸기>를 근대상류층사회라는 무대와 불륜이라는 색채와 어른들의 세계와 행동, ADULTERY를 넣었을 뿐이다.
<벨 아미>는 기 드 모파상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가난한 군인이면서 외모 말고는 별 볼 일 없던 조르주(로버트 페틴슨)이 친구 찰리를 통해 우연히 사교계에 진출하면서 부인들과 연이 트게 되고 부인들을 이용해서 권력을 향해나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벨 아미>를 보나 <딸기>를 보나 그 기본 플롯은 비슷하다. 시대적 배경과 인물에 대한 관점이 다를 뿐이지. 결국 <딸기>의 스토리는 이 영화 <벨 아미>와 비교해보면 정말 순수해보이는 것도 납득이 된다.
<포제션>이라는 영화도 있다.
<포제션>은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로 2002년 작인데 정말 명작이다. 한 여자만을 바라보았다고 알려진 시인 랜돌프 애쉬. 그리고 후대에 랜돌프 애쉬를 연구하는 영문학자 롤랜드 미첼은 우연히 도서관에서 한 여자만을 바라봤다고 알려진 애쉬가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정말로 열정적인 사랑을 느끼고 고백을 하는듯한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녀의 후손이자 학자인 베일리 모드(기네스 펠트로 분)와 그 탐구에 나선다. 애쉬의 사랑은 크리스티벨 드 라모트라는 여류시인이었고 이들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미첼과 모드의 로맨스도 같이 시작이 된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어른의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로 로맨스를 가장한 불륜의 막장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 어른의 사랑이란 것도 하나의 로맨스가 아닐까하는 감독의 견해도 영화에서 종종 보여진다. 특히 <포제션>같은 경우 유부남 애쉬왕 라모트의 밀애여행은 정말 낭만적으로 그려지고 서로가 불륜임을 알아도 이 감정에 충실해지기로 마음먹고 시작되는 본격적인 사랑의 나눔은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매우 아름답게 그려진다. <벨 아미>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 하던 부인들이 비록 다른 외간남자이지만 자신의 사랑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낭만적인 면을 부각시킨다.
<벨 아미>는 권력 지향적인 한 남자와 세 유부녀의 타락한 이야기다보니 어느 누구라도 그 사랑 이외의 목적에 비판을 가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포제션>도 비판을 가하게 되지만 그 사랑이 <벨 아미>처럼 수단적이지 않다.
랜돌프 애쉬와 라 모트. 이 두 시인의 사랑. 시적인 감정과 낭만의 홍수.
낭만주의 시인 중에서 '로드 바이롱' 은 희대의 바람둥이였다.
낭만주의 시인 중에서 '퍼시 바이셔 셸리'는 elopement 즉, 사랑의 도피를 하였다.
어른의 사랑은 낭만이 될 수 없는 것일까?
확실하게 보이는 것은 그 결말은 언제나 비극이라는 것이다. 청춘로맨스에게는 희망을 주지만 불륜로맨스에게는 절망을 안겨준다.
극 중에서 베일리 박사와 미첼 박사의 사랑도 같이 진행이 되는데 영화 초반부에 베일리 박사는 자신이 연애 중이나 잘 안되는 중이라는 대사가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지나면서 베일리 박사는 어느새 완전 솔로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극 중반에 베일리 박사 집에서 다른 남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미첼 박사는 남자가 나가길 기다렸다가 베일리 박사 집에 가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두 가지의 사랑 모두 낭만이라는 이름 하에 가장이 되어버렸다.
<벨 아미>와 <포제션>. 어른의 사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두 가지 형태가 아닌 가 싶다.
권력 혹은 이익적인 관계 속 신체적 관계.
그리고 당사자에게는 로맨스인 어른의 사랑. ADULTERY.
<딸기>는 지금 읽어도 공감가는 면모가 또 하나 있었다.
진로였다.
대학교 오면 진로고민은 안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대학교 오니 진로에 대해서 더욱더 고민하게 되고 그에 대한 여러 프로그램이 더 많이 있었다. 대학교에서 '진로개발세미나', '진로설계세미나'는 필수교양이며 '취업의 진로와 선택', '창업의 이해', '직업세계의 이해' 와 같은 아예 <취업교양>의 카테고리가 따로 존재할 정도이며 그 정도는 학창시절보다 더 심하다고 느낀다.
문제는 대학생들에게 꿈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거나 점수 맞춰 대학교, 점수 맞춰 특정 전공에 오면서 같이 사라졌고, 오직 취업만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주류세태이다.
대학교 4학년인데도 뭘 할지 몰라서 휴학을 내거나 아무 기업에나 이력서를 넣거나 그냥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즐비하다. 정말 2학년인 내가 봐도 남일이 아닌 정도이다.
<딸기>에는 그 꿈과 진로를 확실하게 정한 아이들이 나와서 자신의 꿈을 나아가고 꿈이라는 단어를 어른이 되서도 서슴없이 쓰며 나아가고 있다.
대학생인 내가 봐도 이들의 확실한 진로와 꿈은 정말 부러울 정도이다.
마나카 준페이는 자신의 꿈인 영화감독을 실현하기 위해 영상연구부를 직접 만다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콩쿠르에 나가서 수상을 하기도 하고 영화사무실에서 스카웃도 받는다. 토죠 아야는 고등학생 때 소설가로 등단을 한다. 기타오오지 사츠키는 집안의 가업을 물려받는다. 니시노 츠카사는 파티셰라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프랑스 유학까지 갔다온다.
일본의 교육제도와 한국의 교육제도의 다른 점이기도 할 것이고 만화의 특성상 해피엔딩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일본은 중학교 입시, 고등학교 입시가 따로 있는데 우리 처럼 단순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가는 인문계 고교가 아니라 마치 대학교처럼 수업을 선택해서 인문계 대학 진학반과 취업진학반으로 나뉜다. 같은 고등학교 안에서도.
아는 선배 누나도 4학년인데 공무원 시험 준비를 2년이나 하다가 지금 4학년으로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일단 지원을 하고 안 되면 대학원이나 학원강사로 취직을 할 거라고 한다.
이런 선배가 한 두 명 있는게 아니다. 오히려 많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된다.
대학원 진학도 시험을 쳐서 합격하는 만큼 어려울 뿐더러 학비 문제도 있고 사회에는 나와 비슷한 스펙과 나와 비슷한 능력의 사람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에 오게끔만 교육이 아닌 훈련을 받았지 무엇이 되라고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 무엇이란 것도 아주 한정적이다.
의사, 변호사, 검사, 판사. 교사. 공무원.
왜 로스쿨 다닌다고 하면 우수한 학생 취급을 받으며 디자인과 다닌다고 하면 힘든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로스쿨 다니면서도 간통죄를 저질러서 퇴출당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각종 디자인 공모전에 수상하고 좋은 디자인 회사에 입사해서 실력을 의기양양하게 펼칠 수도 있는데?
<딸기>에서 그들의 뒷 이야기는 모른다. 사회초년생이 되어서 꿈을 향해 막 시작하는 걸로 끝난다. 이것이 진정한 시작인데.
결국 소년만화란 한 소년의 판타지와 이상향에서 끝나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분석적으로 지루하게 풀어놓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알콩달콩하기도 하고 야시꾸리하기도 한 재미있는 만화책이다.
여자에 대한 남자의 대표적인 이상향들을 억지반영시키고 추운겨울에도 각선미를 드러내고 다니는 만화 속 여자주인공들은 지금 보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남성주의가 만연해있음이 보인다. 어찌보면 위험한 만화책이기도 하다. 소년만화에 등재할 정도인 이 상황을 거꾸로 보면 남자들의 기가 많이 죽어있음을 보이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긴 에세이를 쓰면서 남긴 결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딸기>와 같은 순수한 사랑은 이제 스토리로만 존재하며 없다고 느끼는 내가 속물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딸기>인물들만큼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며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P.S <딸기 100%>보고 이렇게 장문의 에세이를 쓰는 나도 참 별난 것 같다. 그것도 굳이 영화에세이라고 포장하면서...하하
P.S <벨 아미>를 곁들였으므로 영화평론은 아니어도 영화에세이로 인정~~
P.S <포제션>을 곁들였으므로 영화평론은 아니어도 영화에세이로 인정~~
이름(성)의 유래
작중의 캐릭터 네이밍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특히 메인 히로인 4명을 필두로 방향이나 위치에 관련된 성이 많다. 다음과 같다.
- 마나카(真中)
- 〈한가운데〉라는 뜻
- 토조(東城)・니시노(西野)・키타오오지(北大路)・미나미토(南戸)
- 마나카(真中)를 중심으로〈동서남북(東西南北)〉
- 오오쿠사(大草)・마나카(真中)・코미야마(小宮山)
- 순서대로〈대중소(大中小)〉. 인기있는 정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 마나카(真中)・소토무라(外村)
- 〈안(中)과 밖(外)〉
- 아마치(天地)
- 〈하늘과 땅(天地)〉
- 하시모토(端本)・소토무라(外村)・무카이(向井)
- 〈끄트머리(端)・밖(外)・건너편(向かい, '무카이'라고 읽는다)〉
- 미나미토(南戸)・사이온지(西園寺)・키타하라(北原)・히가시오(東尾)
- 소토무라 주최 미팅의 여자쪽 멤버.〈동서남북(東西南北)〉
- 마나카(真中)・무카이(向井)・우라사와(浦沢)・사타케(左竹)・미기시마(右島)
- 입시학원 멤버. 마나카를 중심으로〈좌우(左右)〉와〈건너편(向)〉〈뒷쪽(裏)〉
- 니시노(西野)・히구레(日暮)
- 〈서쪽(西)에서 해가 진다(日暮, 일몰이라는 뜻)〉에서 유래하고 있다.
- 소토무라(外村)・우치바(内場)
- 19권 권말 부록의 커플.〈안밖(内外)〉
- 시라토리(白鳥)・쿠로카와(黒川)・사토(佐藤)(교사)
- 교사는 〈색〉이 이름에 들어가 있다. 〈흰색(白) 검은색(黒) 연보라(藤)〉
- 콘도(近藤)・토야마(遠山)
- 〈오쓰! 버거(사츠키와 마나카의 아르바이트 가게)〉의 점원。〈가깝고(近) 멀다(遠)
이미지출처 : 학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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